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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의 기색이 사라지고 잠시 후,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소리를 내지 않도록 문 앞으로

가, 신중하게 문 손잡이를 잡는다.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찔하지만, 로드가 돌아

올 기색은 없다.살짝 힘을 준다. 처음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던 문은 조용히, 간단히 열렸다.

눈을 크게 뜨고, 오른손으로 입구의 가장자리를 잡는다.그리고, 나는 천천히 오른발을 한걸

음 밖으로 내밀었다.발바닥이 바닥에, 방 밖에 닿는다.――역시, 생각한 대로다.나갈 수 있

다. 처음에 대기하게 되었을 때는 도저히 나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탈출할 수 있다.처음과

의 차이는 무엇인가?로드는 이번에, 나를 두고 갈 때――명령을 하지 않았다. 처음처럼, 방

에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이 없었다.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명령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방에서 나갈 수 있다.두근, 고동을 멈췄을 심장이 뛰는 느낌이 들었다.이것이――차이다. 로

드의 상정과, 지금의 나의 상황의 차이다.로드는 내가 도망칠 가능성을 전혀 상정하고 있지

않다. 명령을 잊었을 가능성은 없다. 죽은 자를 조종하는 마도사가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할 리

가 없다.아마 최초의 명령은 특별히 의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압 밖

에 낸 말이었을 것이다.그리고, 어째서 내가 도망칠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지 않는가?만약

심장이 멎지 않았다면, 내 심장은 긴장으로 두방망이질을 쳤을 것이다.행운이었다.과거의

자신에게 감사한다. 처음 눈을 뜬 순간, 로드에게 말을 걸지 않은 건, 정말로 행운이었다.

다시 생각하면, 지금까지 로드의 말은 모두 혼잣말과 비슷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명령할 때조차――이쪽의 의사를 묻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다리를 빼고, 살짝 문을 닫고 방금

전에 서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이 상황에서 저택 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 부주의하다. 적

어도 로드의 하루 행동 패턴 정도는 알아야 한다.나의 상상이 맞다면――로드는 나에게 자

의식이 있단 걸 아직 모른다.아직 정보는 부족하지만, 언어가 통하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도

그렇고, 일체 이쪽에서 말을 걸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점도 그렇고, 그렇게 크게는 빗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무엇보다, 자의식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더욱 『처음으로 해

야 할 명령』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이 사실을 들켜서는 안된다.손을 축 늘어뜨리고, 조각상

처럼 자세를 유지한다. 무엇을 하든, 기회는 있을 것이다.